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은 기껏해야 하나이며, 삶의 비밀은 그 경험을 가능한 한 자주 되살리는 데 있다네.
—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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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누릴 수 있는 위대한 경험은 기껏해야 하나이며, 삶의 비밀은 그 경험을 가능한 한 자주 되살리는 데 있다네.

그것을 갈망하며 손을 뻗지 말고 네게 이를 때까지 기다려라.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보상을 받는다. 달리 말하면 실제의 자연 속 사물에서 한 번, 겉으로 드러나는 자연 속 상황에서 또 한 번, 두 가지 방식으로 완결된다.

허영에 찬 두려움과 애타는 질투는 능숙하게 조절하면 사랑의 불길을 부채질하지만, 우정의 다정한 신뢰와 진실한 존중과는 양립할 수 없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치명적인 독이 이미 그녀의 손에 있었고, 곧 사악한 작용을 시작했다.

마음이 이리저리 떠돌며 네게도 닥칠 수 있는 수많은 걱정과 큰 재난을 한꺼번에 쌓아 두게 하지 마라.

진실로 삶에게 주는 것은 삶이며, 주는 사람이라 여기는 너는 그저 증인일 뿐이다.

나는 남성을 동료 인간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실제의 것이든 빼앗은 것이든 그의 홀은 내게 미치지 못한다. 개인의 이성이 내 존경을 요구한다면 따르겠지만, 그때에도 따르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이성이다.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양심은 한 계층이 함께 느끼는 부당함의 감각이며, 실제로 작동하는 가장 좋은 지혜는 서로의 요구를 저울질하는 지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이 왜 잘못인지 논증하는 데에는 아주 능숙하다.

그러므로 성인은 억지로 하지 않으며 일을 다루고, 말에 기대지 않으며 가르침을 전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는 가족의 저택을, 다음 세상에는 가족의 무덤을 세워 놓았다.

침묵하는 나무들 사이의 저녁처럼 슬픔은 내 마음속에서 평안으로 잦아든다.

하지만 배워야 하는 것의 절반을 쓸어 버리고 싶은 때도 있다. 지친 마음은 가장 큰 대가로 얻은 보물조차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외딴섬에 버려진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만족과 행복의 증거라 여기는 것은 노예의 노래를 그렇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의 노래는 같은 감정에서 나온다.

해리의 말처럼 자기 삶의 관객이 되는 것은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성적인 존재에게는 같은 행동이 자연에도 이성에도 맞는다.

자연을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것.